2013년 2월 27일 수요일

봄이 오다


봄이 오다





일이 많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었다. 결혼 초기엔 아이를 낳지 말자고까지 했다. 나는 바쁘고 힘든 기자생활. 와이프는 육아 걱정. 아이를 잘 기를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결혼생활 7년째. 우리의 사랑은 깊어지고 이제서야 아이를 맞이할 준비가 됐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준비한다고 오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차례 기다렸지만 아이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2012년 5월. 오래 기다리던 임신 소식이 들렸다. 우리는 아이를 '봄'이라고 불렀다. 
세상을 올바로 보고, 이웃을 보듬을 줄 알며 무엇보다 따뜻한 아이로 자라길 바랐다. 추운 겨울 끝에 기다리던 봄이 오듯, 우리에게 봄이도 봄날과 같이 왔다. 
그리고 미국으로 연수가 확정(SBS문화재단)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임신 소식을 들은후 3일 만이다. 기자생활 10여년 만에 다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가고 싶었던 스탠포드대학에 가고 싶어했고 많이 준비했다. 병원에 가서 "아이가 잘 들어섰다"는 말을 들었다. 그리고 스탠포드 대학에서 "이번 여름에 올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사실 2012년 상반기는 매우 힘든 시기였다. 하는 일도 힘들었고 의욕이 떨어지고 있었으며 아이는 오지 않고 연수도 확정적이지 않았다.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하지만 봄이가 온 후 많은 것이 한꺼번에 풀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아이를 '복봄'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부럽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우리에겐 큰 걱정거리였다. 한국 산부인과는 커녕 병원도 익숙하지 않은데 외국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떨까? 비용은? 보험은? 병원은? 산후조리는? 중간에 아프기라도 하면? 우리끼리 잘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살면서 하나둘씩 풀어갔고 또 풀렸다. 

와이프에게 임신 8~9개월부터 조산 우려가 있었다. 봄이가 세상을 빨리 보려 하나보다고 생각했다. 조산기 때문에 1박 2일 병원에 입원도 했다. 가진통이 계속됐고 이대로 가면 먼저 나올 확률이 있다고 판단돼 폐성숙 주사를 맞기도 했다. 우리는 조산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출산후 조리를 도와주기 위해 어머니(시어머니)도 예정보다 2주 일찍 모셨다. 와이프는 그래도 버텼다. 조산해서 인큐베이터에 가면 아이가 미성숙된 상태로 나오는데다가 막대한 비용도 큰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반전이 있었다. 예정일이 지나도 봄이는 오지 않았다. 초산은 1, 2주 정도 늦어지는 것이 보통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지만 조산기 때문에 고생했기 때문에 더 늦어질 것이라고는 쉽게 예상치 못했다. 우리는 '늦봄'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많이 걸었다. 만삭을 이끌고 산책하기도 쉽지 않음에도 걷고 또 걸었다. 샌프란시스코, 랜초 샌안토니오 등을 걷고 박물관, 미술관도 갔다. 예정일이 지나 봄이를 기다리던 시간은 많이 행복했던 순간이었다. 특히 집에서 많은 고생을 하시다가 미국에 처음 오신 어머니에게 여유로운 시간이 됐다. 

그리고 2월 3일 오후 9시 10분. 본격적인 진통이 왔다. 그날은 슈퍼볼(SuperBowl) 하던 날이다. 집에서 저녁을 먹은 후부터 와이프의 진통이 심상치 않았다. 병원에 전화 하니 "한시간은 좀 지켜보자"고 했다. 병원에 갔다가 다시 돌아올 수도 있어서 좀 기다렸다. 와이프는 "이번엔 진짜인 것 같다"고 했다. 병원에 가고자 준비하는데 진통은 더 심해졌다. 3시간 정도 진통을 했고 너무 아파했다. 병원(Labor & Delivery) 에 도착하니 날이 바뀌어 2월 4일 12시 4분. 
본격적인 출산 준비를 했다. 무통주사를 준비하려는 순간, 간호사(다행히 한국인 간호사가 계셨다)가 "주사는 늦었다. 그냥 낳자. 힘줘야 한다"고 했다. 와이프는 힘을 주기 시작했다. 내가 왼쪽 손과 발을 잡고 간호사가 오른 발을 잡아줬다. 와이프가 이후 수차례 푸시를 하고 봄이 머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의사가 머리를 잡고 꺼냈고 봄이는 세상에 나왔다. 순산이었다. 와이프는 진통할때 많이 아파했는데 정작 봄이가 나오는 순간부터 얼굴이 평온해 보였다. 사랑의 호르몬 옥시토신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봄이의 탯줄을 끊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도와줬다.
2월 4일 1시 16분, 봄이 왔다. 봄이는 일주일 늦게 나오더니 태명처럼 '입춘'에 태어났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미국에서 모두 2월 4일이다. 봄이 될 운명인가보다. 
이름은 부모님이 작명사의 도움을 받아 '현서'라고 지었다. 우리는 '클레어'라는 영어 이름을 지어줬다. 공교롭게도 봄이의 고향인 '산타 클라라(상서로운 빛)'란 뜻이다. 빛이 될 운명인가보다. 












댓글 3개:

  1. 축하드립니다. 건강하게 잘 자라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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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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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봄이와 제 생일이 같네요. 물병자리. 지금 한창 이쁘겠네요^^.
    빛이 될 수 있게 잘 자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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